정함과 부정함( Clean and Unclean)
작성자
박 안드레 목사
작성일
2020-04-10 10:48
조회
774
정한 것(깨끗한 것)과 부정한 것(더러운 것)을 따지는 모든 종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나누어서, 부정한 것에 정한 것이 접촉하면 정한 것이 부정을 타서 부정하게 된다는 사상입니다. 이것을 신학용어로 "Defilement by Association(우리말로 “접촉으로 인하여 부정 하게 됨”)이라고 하는데, 이 사상은 이 세상의 고등 종교뿐만이 아니라 고대의 무속 신앙 속에서도 많이 발견 됩니다. 이러한 사상에 따라서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정한 자는 부정한 것들을 피하고, 만지거나 먹지 말고 자기 자신을 항상 부정한 것들과 멀리 해서 깨끗하게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지요. 특히 예수님 시대의 유대 땅에서 살던 바리새인들은 이 사상을 철저하게 지켰읍니다. 바리새인들이라는 칭호를 헬라어로 PARISAIOI 라고 하는데 히브리어 PERUSHIM(분리 된 자들) 에서 유래 됬다고 합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분리 사상에 입각해서 죄를 짓고 사는 자들이나 로마 정부에 아부하며 동족의 피를 빨아 치부하는 세리들 그리고 윤리적으로 죄를 짓고 사는 창녀들은 부정한 자들이라고 하며 사람 취급도 안하고 그들로 부터 항상 멀리 하려고 하였던 것을 우리는 복음서들을 통해서 잘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칼 하게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행적은 그 바리새인들과는 정반대 이었읍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죄인들과 세리들 같은 부정한 자들에게 다가 갔으며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그들에게 가르치셨읍니다.이것을 못 마땅하게 여기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세가지 별명을 붙여서 비난 하는데, 마태복음 11장과 누가복음 7장에 다음과 같이 잘 나타나 있읍니다.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마11:19. 눅7:34). 이 공관복음의 Q자료에 나타난 바리새인들의 비난을 좀더 자세히 풀어 보면 예수님은 음식만 대접 하면 대접하는자가 비록 더럽고 부정한 죄인들이라 할 지라도 그들과 함께 앉아서 음식을 먹는 자 즉 음식에 환장 한자라고 비난 하는 것이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라는 뜻은 단순히 식사 하며 포도주를 조금 같이 마시는 것이 아니고 , 헬라어로 "OINO-PHOTES"라고 비난 한 것인데, "OINO" 는 술(Wine )이고 "PHOTES" 는 영어로 해석 하면 "Bibber" 우리 말로는" 폭음자" 혹은 "술에 쩔어 사는 자"라고 비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서상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술 취하셨다는 내용은 없고, 그 당시에 쓰여진 나사렛 예수에 관한 여러 다른 문서들이나 로마 행정관들의 보고 서신들 그리고 그 당시의 유대 역사 서적과 위경들(가짜 성경들 예를 들면 도마 복음서 같은 서적들) 속에서 조차도 예수님이 술에 빠져서 폭음 하며 사셨다는 내용은 전혀 찾을 수 없읍니다. 단지 예수님이 세리들과 함께 식사 하시며 그 당시의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이 하였던 것 처럼 포도주를 음식 삼아 조금 마신 것을 과장해서 공격 한 것임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읍니다.
사실 그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화가 난 것은 주님께서 음식을 잡수시고 포도주를 조금 마신 사실이 아니고 자기들의 오랜 전통이자 가르침 즉 "부정한 자들과 분리 되어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유대 민족의 오랜 종교 철학인 "부정 한것으로 부터 육적으로 분리해서 오는 거룩(성결)함"이리는 사상에 동조 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개혁적으로 부정한 자들을 불쌍하게 여기며 사랑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2:17)라고 말씀 하시며 ,그들을 회개시키고 주의 백성으로 만듬으로서 부정 한 것에 정 하고 거룩한 것이 접촉 할 때 정한 것이 더러워지는것이 아니고 오히려 반대로 부정한 것이 정하고 성결해지며 거룩해 진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 주셨읍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을 "Sanctification by Association( 접촉으로 인하여 성결하게 됨) " 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현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합니까? 우리 이웃 사람들의 죄 지음과 술 마심 그리고 흡연이 무서워 그들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며,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을 전도하려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과 친하게 지내면 손가락질 하고 뒷 담화로 그 그리스도인들을 정죄 하며 현대판 바리새인들로 살고 있지는 안는지요? 만약 우리가 세상에 만연하는 악이 무서워 교회에 숨어서, 우리끼리만 교제 하고 믿지 않는 많은 세상 사람들과 분리 되어 바리새적인 거룩함만을 추구 하면서 산다면 어떻게 죄 짓는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 할 수 있읍니까?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 위임을 수행하여, 착한종 그리고 부지런한 종이라고 주님 앞에서 칭찬 받을 수 있읍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본을 받아 더욱 강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정한 자들에게 다가 가듯이, 강한 믿음과 복음으로 무장하고 어둠 속에서 죄 짓고 술 취하며 쾌락에 빠져 사는 우리 이웃들에게 다가 가서 그들에게 주님으로 부터 오는 빛을 비추고 암흑속에 감추어져 있는 그들의 죄를 드러내는 빛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며, 동시에 그들을 회개 시키고 주님의 품안으로 인도하는 인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이 교훈을 에베소서 5장 8절로 17절까지 잘 설명 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빛의 자녀로서 어둠에 참여하여 죄짓지 말고, 오히려 그 어두움을 비치는 주의 자녀로서 빛의 열매를 맺어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 함으로 살아가기를 가르 치십니다. 우리 기독교는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종교입니다. 속세를 피하여 산 속으로 피신하는 타 종교와 같이 수동적이고 비관적인 사고를 반대합니다. 오히려 우리 기독교는 세상의 죄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이 세상의 어두움에 빛을 비추는 의로운 빛과 소금의 역활을 감당하여 이 암흑의 세상을 빛의 세상으로 바꾸는 회복의 종교입니다.
이렇게 강하고 능동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에베소서 6장의 바울 사도의 다음과 같은 가르침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복음의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는 죄와 분리되어 거룩하고 성결하게 살아 가야 하지만, 육적으로는 빛과 소금의 역활을 다하기 위하여 무장을 하고 부패한 이 세상의 죄 속으로 들어 가야 합니다. 현대를 살아 가는 우리 주안의 형제 자매님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부정한 것들을 정하게 만드는 주님의 사도들로 거듭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칼 하게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행적은 그 바리새인들과는 정반대 이었읍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죄인들과 세리들 같은 부정한 자들에게 다가 갔으며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그들에게 가르치셨읍니다.이것을 못 마땅하게 여기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세가지 별명을 붙여서 비난 하는데, 마태복음 11장과 누가복음 7장에 다음과 같이 잘 나타나 있읍니다.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마11:19. 눅7:34). 이 공관복음의 Q자료에 나타난 바리새인들의 비난을 좀더 자세히 풀어 보면 예수님은 음식만 대접 하면 대접하는자가 비록 더럽고 부정한 죄인들이라 할 지라도 그들과 함께 앉아서 음식을 먹는 자 즉 음식에 환장 한자라고 비난 하는 것이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라는 뜻은 단순히 식사 하며 포도주를 조금 같이 마시는 것이 아니고 , 헬라어로 "OINO-PHOTES"라고 비난 한 것인데, "OINO" 는 술(Wine )이고 "PHOTES" 는 영어로 해석 하면 "Bibber" 우리 말로는" 폭음자" 혹은 "술에 쩔어 사는 자"라고 비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서상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술 취하셨다는 내용은 없고, 그 당시에 쓰여진 나사렛 예수에 관한 여러 다른 문서들이나 로마 행정관들의 보고 서신들 그리고 그 당시의 유대 역사 서적과 위경들(가짜 성경들 예를 들면 도마 복음서 같은 서적들) 속에서 조차도 예수님이 술에 빠져서 폭음 하며 사셨다는 내용은 전혀 찾을 수 없읍니다. 단지 예수님이 세리들과 함께 식사 하시며 그 당시의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이 하였던 것 처럼 포도주를 음식 삼아 조금 마신 것을 과장해서 공격 한 것임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읍니다.
사실 그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화가 난 것은 주님께서 음식을 잡수시고 포도주를 조금 마신 사실이 아니고 자기들의 오랜 전통이자 가르침 즉 "부정한 자들과 분리 되어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유대 민족의 오랜 종교 철학인 "부정 한것으로 부터 육적으로 분리해서 오는 거룩(성결)함"이리는 사상에 동조 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개혁적으로 부정한 자들을 불쌍하게 여기며 사랑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2:17)라고 말씀 하시며 ,그들을 회개시키고 주의 백성으로 만듬으로서 부정 한 것에 정 하고 거룩한 것이 접촉 할 때 정한 것이 더러워지는것이 아니고 오히려 반대로 부정한 것이 정하고 성결해지며 거룩해 진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 주셨읍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을 "Sanctification by Association( 접촉으로 인하여 성결하게 됨) " 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현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합니까? 우리 이웃 사람들의 죄 지음과 술 마심 그리고 흡연이 무서워 그들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며,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을 전도하려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과 친하게 지내면 손가락질 하고 뒷 담화로 그 그리스도인들을 정죄 하며 현대판 바리새인들로 살고 있지는 안는지요? 만약 우리가 세상에 만연하는 악이 무서워 교회에 숨어서, 우리끼리만 교제 하고 믿지 않는 많은 세상 사람들과 분리 되어 바리새적인 거룩함만을 추구 하면서 산다면 어떻게 죄 짓는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 할 수 있읍니까?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 위임을 수행하여, 착한종 그리고 부지런한 종이라고 주님 앞에서 칭찬 받을 수 있읍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본을 받아 더욱 강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정한 자들에게 다가 가듯이, 강한 믿음과 복음으로 무장하고 어둠 속에서 죄 짓고 술 취하며 쾌락에 빠져 사는 우리 이웃들에게 다가 가서 그들에게 주님으로 부터 오는 빛을 비추고 암흑속에 감추어져 있는 그들의 죄를 드러내는 빛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며, 동시에 그들을 회개 시키고 주님의 품안으로 인도하는 인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이 교훈을 에베소서 5장 8절로 17절까지 잘 설명 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빛의 자녀로서 어둠에 참여하여 죄짓지 말고, 오히려 그 어두움을 비치는 주의 자녀로서 빛의 열매를 맺어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 함으로 살아가기를 가르 치십니다. 우리 기독교는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종교입니다. 속세를 피하여 산 속으로 피신하는 타 종교와 같이 수동적이고 비관적인 사고를 반대합니다. 오히려 우리 기독교는 세상의 죄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이 세상의 어두움에 빛을 비추는 의로운 빛과 소금의 역활을 감당하여 이 암흑의 세상을 빛의 세상으로 바꾸는 회복의 종교입니다.
이렇게 강하고 능동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에베소서 6장의 바울 사도의 다음과 같은 가르침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복음의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는 죄와 분리되어 거룩하고 성결하게 살아 가야 하지만, 육적으로는 빛과 소금의 역활을 다하기 위하여 무장을 하고 부패한 이 세상의 죄 속으로 들어 가야 합니다. 현대를 살아 가는 우리 주안의 형제 자매님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부정한 것들을 정하게 만드는 주님의 사도들로 거듭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